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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별 지명 유래

  • 제목 추천교(덕진동)
  • 작성자 전주시청
  • 등록일 2007-11-11

4백여년 전 가르내(현재의 下可마을)일대는 전주 이씨들이 집단으로 마을을 이루고 살았는데 비록 생활은 어렵다 하더라도 화목하고 효성이 지극했다. 추탄(楸灘)의 부친 달성공(達誠公)이 중병으로 몇 달 째 누워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갑자기 위독한 사경을 당하게 되었다.
인근 비석날(현재 팔복동 버드랑주)에 거주하는 명의 소식을 듣고 선걸음에 달려가 동의보감에 의한 처방에 따라 명약첩을 받아들고 급히 귀가하는데 때 마침 뇌성벽력을 치며 폭우가 쏟아져 내려 삽시간에 전주천은 범람했다. 추탄은 암담한 가운데 촌각을 다투는 부친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 앞뒤를 가릴 것 없이 홍수가 넘쳐대는 전주천에 뛰어들고 말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냐! 제방을 넘실대던 물살이 양쪽으로 좌악 갈라지면서 추탄이 걸어 갈 길이 트이는 것이 아닌가. 이것 저것 가릴 겨를이 없는 추탄은 한 걸음에 집으로 달려와 숯불에 약을 정성스럽게 달여 시각을 다투는 부친의 입술을 적셔드리자 잠시 후 전신을 흥건히 적시는 땀을 흘린 부친은 숨을 급히 몰아쉬고 난 뒤 마침내 기사회춘하여 완쾌되었다.
대홍수로 넘실대던 냇물은 추탄이 건너간 다음에 합쳐져 흐르게 되므로 그의 지극한 효성은 하늘도 도왔다는 인근 주민들의 칭송이 자자했을 뿐만 아니라 효행의 귀감이 되어 마을 주민들은 힘을 모아 나무다리를 놓기로 했다. 오늘날 추천교의 자리가 된 나무다리를 놓았을 때도 추탄(楸灘)의 「추」자를 따서 추천교(楸川橋)라고 했다. 냇물이 갈라진 웃마을을 상가리(웃가르내), 밑으로 갈라진 마을은 하가리(아랫가르내)라고 지금도 부르고 있다.
1925년 콘크리트 암거 교량을 건설하고, 옛 이름대로 추천교(楸川橋)라고 했는데 팔복동 황방산 밑 추천대를 중건(重建), 그 효행을 기리고 있는데 「가선대부, 병조참판 겸 지의금부사, 사헌부, 대사헌, 추탄선생, 조대비」(嘉善大夫, 兵曹參判兼 知義禁府事, 司憲府, 大司憲, 楸灘先生, 釣臺碑)라고 새겨진 비는 추천교를 흐르는 물을 지켜보며 당시를 회상하고 있는 듯하여 보는 이들의 감회를 솟구치게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