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묵은 지붕 너머로 새파란 하늘이 씻은 듯이 시리다. 우선 무엇보다도 그것에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밀밀하였으며, 대낮에도 하늘이 안 보일 만큼 가지가 우거져 있었다. 그 나무들이 뿜어내는 젖은 숲 냄새와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 소리, 지천으로 피어 있는 시계꽃의 하얀 모가지, 우리는, 그 경기전이 얼마나 넓은 곳인지를 짐작조차도 할 수 없었다.“
- 최명희, 「만종 」中
저는 전주 한옥마을의 터줏대감, ‘경기전’입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고 있지요. 그래서인지 제 이름은 ‘왕조가 일어나 경사스러운 터’라는 뜻이랍니다.
저를 구경하러 들어오시려면 먼저 하마비를 지나치셔야 됩니다. 아래 하, 말 마. 하마비는 이곳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말에서 내려야한다는 표석이지요.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제 앞을 지켜주는 하마비만큼 아름답고 정교한 하마비는 없답니다. 하마비를 떠받들고 있는 영물은 암수로 쌍을 이루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암컷이고, 수컷일까요? 좀 더 사나운 표정으로 송곳니를 보이며 '어흥!' 하고 있는 것이 수컷이고, '으흠-'하며 새침하게 있는 작은 것이 암컷이랍니다. 아무리 봐도 구분이 안 간다면 뒤로 가서 엉덩이를 보시면 됩니다. 수컷에 비해 훨씬 풍만한 암컷의 엉덩이를 보면 실소가 절로 나오실 거랍니다.
저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혼령의 공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건물 기둥 밑을 하얗게 칠해놨는데, 이는 흰 구름을 상징합니다. 또한 목조 건물이기 때문에 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화재지요. 때문에 붉은 방풍벽 가운데에는 동그란 모양으로 튀어나온 것이 위아래로 자리 잡고 있는데요, 바로 거북이랍니다. 물에 살고 장수를 의미하는 거북이 암수를 붙여놓아 불조심의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또한 양쪽에는 물을 다스리는 수신, 용의 머리로 장식을 해 조상을 모시는 사당에 화재가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하고자 하는 뜻이 담긴 것이지요. ‘불조심’이란 푯말보다 훨씬 운치 있고 낭만적인 장식을 통해 조상들의 재치를 엿볼 수 있으시죠?
참, 어진이 봉안된 건물을 들어오셔서 천장으로 시선을 돌리면 기쁠 희와, 그 기쁠 희를 네 귀퉁이에서 감싸고 있는 3자 모양의 파란 새가 보이실 겁니다. 바로 박쥐입니다. 박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원한 복을 상징하기에 조선 왕조가 영원히 기쁘고 복되길 기원하는 의미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답니다.
이렇게 저는 건물의 세세한 곳까지 조선 왕조의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제 안에서 500년 역사의 숨결과 옛 조상들의 얼을 느끼시길 바라며, 여러분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경기전
- 주소(우) 55042 전북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 전화번호063-281-2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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